나눔교육을 담당하는 간사로서 가장 처음의 고민은 ‘나눔을 과연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일까?’와 ‘교육을 한다면 어떤 나눔의 가치를 나눠야 할까?’였습니다. 여전히 이 고민은 진행 중이며, 재단에서 나눔교육 반디 활동을 진행하는 성인 멘토인 반딧불이 역시 이러한 고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눔교육을 하면 할수록, 그리고 함께 청소년들이 많아질수록 이런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반딧불이 송은옥 선생님의 고민을 시작으로 이후 반딧불이 모임을 통해서 ‘나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여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뜻을 모으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미룬다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다.
결국 이번에도 해야만 하는 일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미리 하지 않고 마감일까지 미뤄 나 스스로를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더 대단한 것도 아니고,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깊이가 있는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생긴 습성이다. 마감일에 맞춰서 거꾸로 시간 계산을 하며 일하는 습관이 일상화되어 버린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늘 나 스스로에게의 독촉과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은근 나에게도 늘 할 일이 있음에 위안 받으며 끝까지 그 마음을 느끼며 누리고 싶음인 듯하다. 이건 뭘까? 일 중독? 할 일없음에 대한 불안증인가? 아니다. 중독도 불안증도 아닌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최대한 감추고자 하는 욕심인거다. 내가 그 고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늘 부족한 나임을 알기에 혹시나 그 고민의 시간이 지나면 더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으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반딧불이 생각] 나눔이란 무엇일까? 

이런 내가 아름다운재단의 나눔 교육 반딧불이로 활동을 한다. 활동을 하면서부터 시작한 ‘나눔’에 대한 나의 생각 정리는, 아니 고뇌는 마감일이 없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알려고 하면 할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잡힐 듯 말 듯 머릿속엔 강하게 맴돌지만 정의 내리지 못함에 더 답답증을 느낄 뿐이다. 반딧불이로 활동하기 전에는 나눔이란 단어에 대해서 이렇게 고민을 해 본적도, 이렇게 어렵다고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아무리 종이사전이고 인터넷 사전을 찾아봐도 내 머릿속을 맴도는 나눔에 대한 정의는 아니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내 생각인데도 내가 정리하지 못하는 이 답답증은 나를 더 고뇌하게 한다. 그런데 함께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의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의 정의에 대해서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해’, ‘그거 내 생각이랑 똑같네!’ 맞장구를 치게 된다. 이러한 내 모습에 줏대도 없어 보이고 정체성도 없어 보이고 생각조차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가장 기본적인 나눔에 대한 정의만 나오면 부끄럽지만 고개가 숙여지고 눈동자가 심히 흔들린다. 그렇다고 남들이 말하는 내가 생각하는 나눔에 대해서 실천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릴 때 했던 것들은 제쳐두더라도 대학 때부터 상기해보면 야학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학도들과 많은 것을 함께 하며 나누었고, ARS로 모금 중인 텔레비전을 보며 전화기 다이얼도 몇 번이고 눌러보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모금활동이나 캠페인 하는 것을 보며 기부도 하고 서명도 하고 촛불시위 등 참여도 해 보고 봉사라는 명목으로 여러 활동도 하고 있음에도 너 나눔 활동하고 있니라고 물어오면 말하기 조심스러워지며 답에 대해서도 멈칫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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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고 멈칫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나눔 활동’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듯하다. 활동이라 하면 왠지 모르게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언급한 나의 경험들은 그냥 나의 행동이었다. 마냥 좋아서,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했던 것이다. 그러한 행동을 했을 그 당시에 누군가가 너는 그걸 왜 하느냐고 물어오면 그냥, 약속했으니까라는 답변으로 모든 게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한 번만 더 질문을 구체적으로 네가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더라면 지금 하는 이 고민을 그때부터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쯤은 나눔에 대한 나만의 개똥철학일지라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참여를 유도한 이효리씨나 몰래 하는 기부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고 또 따라 하게 할수록 좋은 것이 기부라고 했던 유아인씨보다 더 멋진 말과 행동으로 나의 나눔에 대한 개똥철학을 실천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때부터 고민했더라도 아직도 답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니 지금이나마 고민하게 된 것에 감사해야겠다. 또한 함께 고민하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른 모든 반딧불이 선생님들에게도 감사하다. 감사한 이유는 나의 인생 이모작인 실버산업의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한 조건으로 내가 정한 시니어 3.0의 키워드로 소통과 관계, 나눔 중 나눔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 줌으로써 나에게 확신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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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기다 보니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으로 실천되었던 나눔에 대해서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활동으로의 나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눔과 교육이 만나서 활동하는 반딧불이를 사랑한다. 무조건적이고 에누리 없는 나눔 실천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계획하여 실천하는 나눔 활동도 필요하다. 어차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데 ‘나’보다 ‘우리’를 의식하고 ‘우리’를 생각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한걸음 더 내딛는 거다. 그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나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히고 고뇌하게 만든 것은 바로 나눔에 대한 정의였다. 아주 기본적인 정의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머리와 마음속에는 있지만 글이나 말로 제대로 표현 못하는 나를 보며 나눔에 대해서 글을 쓰고, 나눔 교육을 할 자격이 있는가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고민은 때론 나를 무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나눔에 대한 정의가 정리가 되어 명확하게 표현이 되어야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생각 정리보다 고민과 공감으로 나눔 실천이 먼저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러던 중에 나눔 활동을 하는 파트너 기관 담당자들과의 워크숍에서 내가 나눔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지 못 했던, 무엇인가 아쉽고 부족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참여해 주신 한 선생님께서 나눔은 차의 정신이라고 하시며 차의 문화에서는 상대방의 잔을 채워줄 때 70%만 차로 채우고 나머지 30%는 정으로 채워준단다. 그 말씀을 하시는데 아하 싶은 것이 나눔을 실천할 때 70%는 우리가 늘 언급하는 재능과 물건, 돈, 목소리 등 보이고 말할 수 있는 것과 형언할 수 없는 참여에 대한 기쁨과 뿌듯함, 함께 한다는 것 등에 대한 30%가 있었던 것이다.

나눔이 뭘까?
누가 물어도 이제는 그때그때 나눔 활동을 할 때마다의 상황, 대상, 그리고 그때의 내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나눔에 대한 정의나 실천이 늘 변할 수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직 개운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나만의 ‘나눔’에 대한 개똥철학을 세우기 위해 앞으로도 나의 나눔 활동만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눔을 미룸으로써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글ㅣ 송은옥 (반딧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