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이’ 우리‘라서’ 할 수 있는 일

9월 30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주말을 앞둔 아이들의 왁자한 하교시간이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일주일의 긴장을 풀어주는 이때, 유독 바삐 움직이는 남다른 무리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금호여중 희망나눔반 ‘7펀조’다. 하나둘 복지실로 모여든 7펀조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이것저것을 꼼꼼히 챙긴다. 마스크 팩과 핸드크림, 음료수와 과자를 확인한 뒤 서둘러 학교를 나선다. 봄부터 준비해 온 나눔교육의 결실을 맺기 위해 ‘청구노인복지센터’를 향하는 길이다.

7펀조 모둠원들이 학교 사물함 게시판에 함께 봉사활동할 친구 찾는 글 게시

7펀조 모둠원들이 학교 사물함 게시판에 함께 봉사활동할 친구 찾는 글 게시


“생소한 이름인 ‘7펀’은 일본 애니메이션 <원펀맨>에서 따왔어요. 악의 무리에 맞서 정의를 불태우는 원펀맨처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우리 의지가 깃들어 있죠.”
(배채윤)

금호여자중학교에 재학 중인 방류희, 정지예, 배채윤, 조수민, 한지혜, 조연우와 함께 활동할 조영실 반딧불이. 그렇게 일곱 명이 머리를 맞댄 채 해결책을 내놓을 거라서 ‘7펀’이란다.

“7펀조가 뭘 다룰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문제란 게 뭘까, 브레인스토밍을 가졌어요. 최종적으로 남은 건 유기견 문제와 노인문제였고, 우리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한 노인, 어르신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정지혜)

독거노인의 식사와 건강, 빈곤, 자식 문제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여러 단체에서 지원하는 서비스이거나 너무 거대하고 사적인 맥락이라 섣부르게 다가설 수 없는 부분은 제외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금호여중 7펀조여서 가능한 일. 그러다 그즈음 사람들을 술렁이게 한 ‘자살’이란 무거운 주제에 이르렀고 ‘무엇이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도록 이끄는가’에 집중했다.

캠페인보다 스킨십을 선택한 이유

7펀조는 조영실 반딧불이와 함께 나무그림으로 노인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며 실체와 닿으려고 노력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말뿐인 해결 방안을 걸러내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뭔가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휴대폰, 교실에 비치된 노트북으로 노인 관련 시설을 검색하던 7펀조는 드디어 노인 식사 문제와 여가 활동을 아우르는 약수노인복지관에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대중 캠페인을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가 아닌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잖아요. 게다가 정작 우리는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노인 자살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않느냐고 소리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스킨십’을 선택했어요.” (조연우)

청구노인복지센터에 어르신들을 만나러 간 금호여중 희망나눔반 친구들

지하강당에서 어르신들 앞에 선 금호여중 희망나눔반 7펀조 친구들

어르신 우울감 해소를 위한 활동이 주제였다. 노인 자살의 원인 중 하나인 우울증에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고심 끝에 다다른 실천은, 손 마사지와 마스크 팩을 해드리면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기. 눈 맞춤하고 손을 맞잡는 순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사실 자신들의 작은 행동으로 단번에 어르신의 일상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동안 평온하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매일 찾아드는 우울감을 잠깐이나마 떨쳐낼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그 찰나의 평온이 반복된다면 우울을 넘어 행복에 닿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단 학교 사물함 보드판에 7펀조 활동을 게시했어요. 봉사활동 갈 친구를 찾고 팩을 기부 받았죠. 선생님께도 홍보해서 기부금(웃음)과 제가 쿠키 만들어서 판매해 마련한 후원금까지 합하면 총 7만2천 원을 우리 힘으로 모았어요. 거기에 아름다운재단에서 자본금 5만 원을 더해 어르신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관심 없었는데 차츰 나누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의견도 내고 반값으로 팩 구입하기 등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방류희)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다

며칠 전부터 등장한 ‘어르신께 젊음의 샘물을!’이라는 홍보포스터가 효과적이었을까. 십여 명의 어르신들이 청구노인복지센터 지하 1층 강당에서 7펀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며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이야기하자 어르신들은 “정말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주는 거냐”면서 연신 웃으며 “고맙다” 화답했다. ‘별 것도 아닌데 귀찮아하시진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은 금세 설렘으로 바뀌었다. 더 정성껏 이 시간을 꾸려야 겠다는 다짐이 일었다.

어르신 손마사지 하는 7펀조

어르신 손마사지 하는 7펀조

“육남매 맏딸이라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았는데 지나서 드는 생각이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공부는 양보하는 게 아니었다면서 공부 꼭 다 마치라는 분도 계셨고, 젊었을 때고 싶은 것 많이 하고 배우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어요. 지혜 담긴 이야기를 듣게 돼서 좋았어요.” (조수민)

기부와 봉사 그리고 나눔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이 사람과 저 사람, 이곳과 저곳 사이를 잇는 다리와도 같았다. 7펀조가 어르신들의 손과 얼굴을 정성껏 매만지자 어르신들은 7펀조에게 살아있는 경험을 나눠주었다. 지나봐야 알겠지만 꼭 그 나이에 필요한 것을 귀띔하며 욕심내서라도 꼭 쥐라고 당부했다. 시간 때우는 억지춘향 봉사활동이 아닌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이 시간은 7펀조와 어르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자, 의견을 내볼까, 물어보면 가만히 있던 아이들이 다섯 번째 모임부터 이것을 하겠다, 저것은 안 된다,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사회문제라는 큰 덩어리가 동네문제로 이어지고 왜 나의 문제가 되는지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러면서 ‘관심’이 어떤 연결고리로 작용하는지를 알아챘어요. 대단한 결과보다는 과정, 어떠한 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낀 아이들이 ‘캠페인보다 실천’이라고 결정했을 때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몰라요.”

조영실 반딧불이는 어떻게 자발성을 획득하는가에 주목했다. 그것이야 말로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동력이었다. 물론 이제 겨우 한 번 실천했을 뿐이다.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이 시작은 일회성 봉사, 생색내기 이벤트와 차원이 다르다. 나와 이웃, 동네와 사회를 위한 7펀조 개개인의 첫 발짝이기 때문이다. 착지할 곳 모르는 그들의 황홀한 도약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