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에는 청소년들이 우선순위 사회이슈를 정하고, 이를 위한 공익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단체를 심사하여 배분, 지원하는 청소년배분위원회가 있습니다. 청소년배분위원회 2기의 공모주제는 ‘차별’이었으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접수받아 심사를 통해 총 5개팀을 선정하였습니다. 청소년배분위원회가 어떤 프로젝트를 지원하였는지, 그리고 어떤 팀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지 하나씩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일하는청소년연대와 청소년배분위원회 서다은위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고등학교 급훈 중에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급훈에 따르면,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는 낮은 신분이며 공부는 사회적 신분을 높이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오늘의 권리를 내일로 미루고 공부를 해야 한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여기 좀 다른 생각을 가진 청소년들이 있다. ‘노동’은 자랑스러운 것이며 노동자는 누구나 당당히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 ‘누구나’에는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청소년들도 포함된다고, 그러니까 청소년들도 당연히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노동조합을 준비중인 일하는청소년연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청소년연대 준비위원회(이하 ‘일하는청소년연대)’는 청소년 노동조합을 세우려고 준비 중이다. 그리고 설립에 앞서 다양한 청소년 노동 이야기를 들어보는 집담회 ‘불평불만’을 열기로 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청소년들이 또 있다. 아름다운재단 청소년배분위원회가 이 집담회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지원도 운영도 모두 청소년이니,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의 프로젝트다.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의 프로젝트

서다은 청소년배분위원은 국제 NGO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어학에도 관심이 많다 보니 되도록 언어능력을 활용하면서 사회변화에 기여하고 싶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단체들을 알아보았다. 성인이 된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최대한 빨리 단체 활동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찾던 와중에 아름다운재단 청소년배분위원회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배분’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고, 청소년들이 1000만 원이나 배분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래서 ‘설마 전문가들이 조언을 해주고 청소년은 대강 돈 봉투만 나눠주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청소년배분위원회는 어른들이 정해 놓은 일에 이끌려가는 다른 활동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주제도 대상도 면접 질문까지도 모두 다 청소년들이 고민하고 논의하고 결정해야 했다. 특히 어려운 고민은 역시 심사였다. 1000만원은 분명 큰 돈이지만 모든 신청 팀과 나눌 정도로 큰 돈은 아니다. 게다가 모든 프로젝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심의 결과물이었다. 그 중에서 최종 선정팀을 고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서다은 위원은 “지원 신청팀들보다 더 떨리는” 심정으로 심사에 참여했고, “얼마나 활동이 구체적인지”를 중심으로 평가를 했다.

많은 권한은 동시에 많은 책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임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서다은 위원은 책임을 진 만큼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만큼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 일단 기대했던 대로 단체 활동을 제대로 경험했다. 그는 “그 전에 했던 봉사 활동들이 직접 제 손을 움직여 돕는 거라면, 배분은 그 손을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면서 “제가 직접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NGO 활동가를 꿈꾸는 서다은 위원에게는 심사자의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평가해본 것도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사회 문제를 새롭게 들여다본 것 역시 큰 수확이다. 그 동안 국제NGO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내 이슈에는 많이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지원 신청팀들은 저마다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도 문제로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새로웠던 것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자 “청소년 노동인권”이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마침 서다은 위원의 담당 분야이기도 하다. 청소년배분위원회는 각자 나눠서 프로젝트 팀과 긴밀히 소통하는데, 그는 청소년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나선 일하는청소년연대를 맡았다.

 

청소년배분위원회 지원으로 진행된 청소년노동인권 집담회

 

청소년 노동자 임금 떼먹고도 “사회 경험”이라는 고용주들

일하는청소년연대는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에서 벌어진 ‘학교 보안관 해직사태’에 연대했던 청소년들이 조직한 단체다. 학교 보안관들은 노조가 없어서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가 너무 힘들었다. 청소년들은 노조의 필요성을 직접 몸으로 확인했고 그러면서 ‘왜 청소년들을 위한 노동조합은 없을까’ 생각했다. 그 고민이 자연스럽게 노조 설립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일하는청소년연대는 내년도 공식 설립을 목표로 열심히 활동한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노동 상담도 하고, 청소년 노동인권 이슈도 발굴해 연구하고, 다른 단체와의 연대 활동에도 나선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 청소년배분위원회에 지원해 청소년 노동인권 집담회도 개최한다.

사실 청소년 노동은 매우 소외된 노동이다. 청소년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대부분 택배 상하차, 배달, 연회장 서빙 등 매우 힘들고 불안정한 파견직이다. 채용 공지에 적힌 ‘나이 무관’은 ‘만 20세 이상이라면 나이 무관’이라는 뜻이다. ‘청소년은 제대로 된 노동자가 아니다’, ‘청소년은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사회의 편견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고용주들은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서도 오히려 선심 쓰듯 “이런 게 다 사회 경험”이라고 말하는 고용주도 있다.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고객과 고용주도 아주 많다. 노동 현실로만 보면 청소년들이 당장 머리띠를 질끈 묶고 연대파업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청소년에게는 노동조합조차 없다.

 

서다은 청소년배분위원입니다.

일하는청소년연대의 권혁진 준비위원장과 청소년배분위원회 서다은위원

청소년이 노동조합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이나 경험, 역량 등의 부족이 아니다. 권혁진 일하는청소년연대 준비위원장은 “조직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일단 자신이 ‘청소년 노동자’라며 당당히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게다가 청소년은 워낙 각 지역과 학교에 분산되어 있다.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에게는 학업과 노동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것도 조합 가입의 걸림돌이다.

그래서 아직 일하는청소년연대의 조합원은 15명이다. 노조가 가진 힘의 뿌리는 결국 조직력인데, 조직부터 막히니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여전히 청소년과 노동은 이토록 참 멀다. “실제로 청소년들의 노동 인식은 어떠냐”고 묻자 서다은 배분위원과 권혁진 위원장은 한 목소리로 “스스로 권리의 주체라는 생각을 못 한다”고 말했다.

서다은 배분위원은 “정해진 시간 이상 일을 하고도 보상을 못 받을 때도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면서 덧붙였다. 권혁진 위원장은 “비청소년도 권리에 대한 인식은 낮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노동자라고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데, 청소년은 사회에서도 권리를 지켜주지 않고 스스로도 권리를 지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역시 노동권의 주체’라는 인식부터 시작해야

청소년 노동인권 집담회 ‘불평불만’은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다. 다양한 청소년 노동인권 의제를 더 깊게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실제로 집담회 참가자들은 청소년 인권의 관점, 여성의 관점, 학력 평등의 관점에서 두루 청소년 노동인권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의 효과성, 청소년을 위한 일자리 정책의 필요성 등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청소년노동인권집담회 '불평불만' 행사 모습입니다.

청소년 노동인권의 문제를 짚어본 일하는청소년연대의 청소년노동인권집담회 ‘불평불만’

행사가 끝난 뒤 서다은 위원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는 재미가 좋았다”고 호평을 했고, 권혁진 위원장은 “끝나서 후련하긴 한데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내용이 좋았던 만큼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운 것이다. 아쉬운 경험 역시 앞으로 더 좋은 사업을 하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권혁진 위원장은 “내년에는 정책연구팀을 꾸려서 청소년 노동인권 이슈를 발굴하려 한다. 또 경남이나 강원 지역에서 이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부를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급훈이 참 촌스럽고 어이없게 느껴지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당당히 이같은 내용의 문구를 박아 넣은 학용품들이 출시된 적이 있다. 당시 이 제품들은 사회적 비난을 받고 판매가 중단됐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중단되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당당하게 노조를 만들고 교섭도 하고 투쟁도 하는 사회. 성인이 된 뒤에도 노동자의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회. 언젠가 이런 사회가 가능할까? 우리는 아직 그 답을 알 수 없다. 다만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손을 잡은 청소년들이 희망의 근거가 될 것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들에 의한 청소년의 노동권. 그 새로운 희망은 이제 막 시작됐다.

 

글 박효원
사진 일하는청소년연대